![바카라 게임 하기가 사기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사진=셔터스톡]](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07/48990_42341_2727.jpg)
동남아시아가 전 세계 사이버 범죄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고도화된 디지털 사기에 인신매매까지 결합된 ‘고기잡이(Pig Butchering)’ 수법이 산업화된 형태로 확산하면서다. 캄보디아, 미얀마 등지에서는 범죄 조직이 불법 인신매매된 노동자를 강제로 사기 콜센터에 투입해, 싱가포르·홍콩 등 부유한 국가의 피해자들을 속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유엔(UN)은 이 같은 사기로 인한 전 세계 피해액을 약 370억 달러(약 51조 원)로 추산했다. 그리고 이 수치는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사이버 범죄가 확산되면서 지역 정세와 정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태국은 올해 중국인 관광객 수가 급감했는데, 이는 중국 유명 배우가 미얀마 내 사기 시설에 납치돼 강제 노동을 당한 사건 이후 관광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최근 사기 방지법을 통과시켜, 피해자 계좌를 경찰이 즉시 동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렇다면 왜 동아시아가 사이버 범죄의 중심지란 악명을 얻게 된 걸까. 보안 소프트웨어 기업 옥타(Okta)의 아시아·태평양 총괄 벤 굿맨(Ben Goodman)은 이 지역만의 고유한 구조가 사기 실행을 용이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아시아는 모바일 중심 시장”이라며 “왓츠앱(WhatsApp), 라인(Line), 위챗(WeChat) 같은 모바일 메신저가 범죄자와 피해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통로가 된다”고 설명했다.
AI 역시 이들의 범죄 수법을 고도화하고 있다. 굿맨은 “기계 번역은 AI의 대표적인 활용 사례지만, 동시에 피해자들이 의심 없이 링크를 클릭하거나 잘못된 요청을 승인하게 만드는 데도 쓰인다”고 경고했다. 아시아의 언어 다양성을 AI가 넘어서며 사기가 더 넓게 퍼지고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일부 국가는 이러한 사이버 범죄에 직접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북한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짜 직원’을 글로벌 테크기업에 침투시켜 정보를 수집하고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는 의혹도 언급했다.
굿맨은 최근 기업 현장에서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AI 리스크로 ‘섀도 AI’를 꼽았다. 이는 직원들이 회사의 공식 승인 없이 개인 계정을 통해 AI 모델에 접근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는 “예컨대 한 직원이 사업 리뷰용 발표자료를 준비하다가 개인 계정으로 챗GPT에 접속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경우”라며 “이 과정에서 기밀 정보를 무심코 외부 플랫폼에 업로드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사용 방식은 회사의 정보 보호 체계를 벗어난 ‘정보 유출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에이전틱 AI(agentic AI, 자율 수행 AI)’의 등장은 개인과 직장의 정체성을 더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 굿맨은 “나는 내 개인 계정으로 업무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반대로 회사 계정으로 개인 용도를 쓰지도 않는다”며 “고객 정체성과 기업 정체성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대신해 결정을 내리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 ‘정체성’ 구분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는 “만약 인간의 정체성이 도난당한다면, 자금이 빠르게 유출되거나 평판이 훼손되는 등 그 파장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글 Nicholas Gordon & 편집김다린 기자 quill@fortunekorea.co.kr